행사 글/기타

빙하기를 격고 가을을 잃었다

kk고상 2008. 11. 25. 09:43

해맑은 병원 302호 병실에서

 

 

                                                                고 상

물들대로 물들고

고일대로 고인 가을웅덩이에 퐁당 빠졌다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널 뻔 했다

팔다리와 뇌가 성숙한 가을을 삼키고

슬픔에 잠겼다

맑고 깊은 물속에 가을은 잡히지 않고

텅 비어 있었다

텅 빈 자리엔

빙하기를 겪고 살아온 민들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꽃이 피고

흙의 뿌리가 되고 하늘의 잎이 되어

텅 빈 자리에 봄의 씨를 뿌린다

병상에서 들리는 수돗물소리는

봄의 귀를 열고 있는 대숲소리다

계곡에서 생명이 흐르는 아우성이다

풍요 뒤 빈곤, 밝음 뒤 어둠

기쁨 뒤 공포, 소란 뒤 침묵 속에서

한 톨 햇살만 있어도

희망의 씨 받는 병상은 만발했다

가을을 잃고 겨울을 딛고 일어섰다

해맑은 병원 302호 병실은

팔다리 딛고 노랑 제비와 노루귀꽃 으로 만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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