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은 병원 302호 병실에서
고 상
물들대로 물들고
고일대로 고인 가을웅덩이에 퐁당 빠졌다
돌아오지 않는 강을 건널 뻔 했다
팔다리와 뇌가 성숙한 가을을 삼키고
슬픔에 잠겼다
맑고 깊은 물속에 가을은 잡히지 않고
텅 비어 있었다
텅 빈 자리엔
빙하기를 겪고 살아온 민들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언제 어디서나 꽃이 피고
흙의 뿌리가 되고 하늘의 잎이 되어
텅 빈 자리에 봄의 씨를 뿌린다
병상에서 들리는 수돗물소리는
봄의 귀를 열고 있는 대숲소리다
계곡에서 생명이 흐르는 아우성이다
풍요 뒤 빈곤, 밝음 뒤 어둠
기쁨 뒤 공포, 소란 뒤 침묵 속에서
한 톨 햇살만 있어도
희망의 씨 받는 병상은 만발했다
가을을 잃고 겨울을 딛고 일어섰다
해맑은 병원 302호 병실은
팔다리 딛고 노랑 제비와 노루귀꽃 으로 만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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