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
— 다시는 볼 수 없는 그대에게
고상원
허 허 웃음만 짓던 그대
안으로 살이 꽉 찼던 사람
자상한 아버지
벌써 떠나가셨나
아슬아슬 이슬방울이었나
사라졌는가
그 누구에게도 없던 스틸스병에
지긋지긋하게 시달리며 싸우더니
결국 쓰러져버렸는가
착했던 사람
어질게 자연사랑했던 사람
그곳에 가서도 도라지 심고 씨 뿌리시오
남산 벚꽃놀이 막 시작했는데
못 가지오
숨은벽 산철쭉도 못 보지오
그래, 님아
불멸의 나비 되어
꽃구경 많이 하시오
불멸의 신선 되어
우리를 어질게 굽어보며 보살펴 주시오
잘 가시오
웃으며 가시오
매일 주고받은 대화의 씨 가지고가
잘 키우시오
아름다웠던 추억의 꽃이니
우리 서로 잘 간직하지오
고약한 고놈 꼭 섬멸해 주시오
고약한 병 낳고 잘 사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