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나라대학/트레킹학과

[스크랩] <코리안 신대륙발견> 베링해협을 건넌 최초의 아메린디안(Amerindians)

kk고상 2009. 12. 3. 13:02

 - 코리안 신대륙발견 -

 

 

베링해협을 건넌 최초의 아메린디안(Amerindians)

- 코리아 동해의 귀신고래(gray whale)와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의 귀신고래 -

- <번역물> 배링해협을 건넌 최초의 아시아인들과 10세기 바이킹들 -

 

*2009년에 발견된 울산 고래바위

반구대 고래 암각화가 있는 지역 인근인 울산시 중구 유곡동 길촌마을 입구

마을 사람들은 옛부터 '범바위'로 불려왔다는데

범고래(Killer Whale) 바위를 의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울산매일경제 2009년 10월 6일자)

 

 

아메리카 인디안들과 만나 우리 문화와의 유사성을 찾아내면서 나는 '콘디안'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콘디안'이라는 말은 필자가 만든 말이다. Korean + Indian을 합친 조어로 'Korndian(콘디안)'이라고 칭한 것으로 '코리안들이 신대륙을 발견했다(The Koreans Discovered the New World)'는 선언을 하기 오래 전부터 '콘디안(Korndian)문화'라는 게시판을 따로 만들어 관련글들을 올려오고 있다.

 

그런데 미국 학자들은 아메린디안(Amerindian)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아메리카 인디안'을 줄여서 쓰는 말로서 초기의 고고학적인 인디안 원주민들을 일컬을 때 쓰는 용어이다.

 

일반적으로 미국인들은 누가 처음에 아메리카 신대륙에 왔다고 여기고 있는가는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베링해협을 통하여 건너온 아시아인들이 먼저이며 그 다음에 10세기경 바이킹들이 신대륙 인근에 오기 시작했다는 것은 흔히 받아들일만한 사실로 인식되어 있다.

 

마지막 빙하시대인 1만년 전 북극해와 알라스카해의 상당부분이 얼면서 베링해협의 바닷물이 해수면 이하 170미터로 내려가 바다밑에 있던 땅이 드러났다. 아시아 대륙과 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이 '대륙간 다리' 땅을 '버린지아(Beringia)'라고 한다. 배를 안타고도 대량으로 장기간 동안 아메리카 대륙과 아시아 대륙은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버린지아 땅은 수천년 동안 이어져 있었기 때문에 전혀 '바다'를 느낄 수 없는 곳이었다.

 

수렵생활을 했던 선사시대 시베리아 아시아인들에게는 아메리카 대륙이란 그저 시베리아의 연장선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맘모스와 순록떼의 움직임을 따라 이동한 수렵인들이었다. 그들이 베링해협을 건널 때는 그저 약간 깊은 계곡 평야 하나를 건너는 듯 했다.

 

이러한 베링해협의 '버린지아'로 대표되는 '연육교'는 아메리카 신대륙 발견의 두 가지 루트 중의 하나였다. 버린지아 연육교 외에 바닷가 해안선을 따라 배로 건너온 알류산 열도 루트가 그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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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필드 뮤지엄의 인디안 섹션 입구에 붙어 있는 게시판들의 하나 (2007년 4월 필자 촬영)

2007년 4월 이전에는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아시아 기원설에 대하여 전혀 언급이 없었다.

 1997년과 2003년 그리고 2007년에 걸쳐 미국 고고학계에서 아막낙 섬의 '코리안 온돌 발굴' 여파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2007년 4월부터 시카고 필드 뮤지엄의 인디안 섹션 입구에 거대한 게시판에도 소개하고 있는 베링해협과 더불어 또 하나의 루트는 이른바 '비치 투 비치(Beach to Beach)'라는 알류산 열도를 따라 알라스카로 건너온 루트를 말하는 것이다.

 

해안선을 따라 건너온 사람들은 왜 해안선을 따라 왔을까?

 

맘모스 대신에 그들은 고래를 따라 건너갔다. 시베리아 지역에서 베링해협을 건넌 경우에는 광범위한 '아시아 원주민들'이 거론될 수도 있을 것이며, 시베리아 설원 수렵민족의 오랜 원시인들을 들먹일 수 있다. 거기에는 그저 원시시대 또는 선사시대 코리안들도 포함된 이미지만이 있다.

 

그러나 해안선을 따라 고래사냥을 하면서 고래를 따라 쿠릴열도 알류산 열도를 건너 간 '비치 투 비치' 루트를 언급할 때 단연 정확하게 '코리안들의 신대륙발견'의 근거가 된다. 고래가 동해에서 반환하여 한반도 동해 연안을 따라 북상하여 오호츠크해와 알라스카해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아시안들의 신대륙발견론을 더 구체적으로 '코리안들의 신대륙발견'을 주장하는 것은 고래때문이며 '비치 투 비치 루트'의 장본인들이 코리안 고래잡이들이었기 때문이다.

 

고래 생태계를 연구해온 해양학자들에 의하면 고래는 절대로 대양을 가로질러 건너가지 않는다. 본래 육지 짐승으로 포유류이며 숨을 쉬는 고래는 연안의 몇마일 권 내에서 육지 해안을 따라 오르내리는 동물이라는 것이다. 코리안들이 고래사냥으로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이론은 드넓은 태평양을 가로질러 거대한 배로 항해하여 건너간 이론이 절대 아니다. 고래따라 연안선을 이용한 신대륙까지 자동으로 건너간 것이다.  

 

이미 울산 반구대의 고래암각화는 세계 최고 오래된 고래 암각화로 알려져 있으며 동해안을 따라 고래들이 올라갈 때 함경도 연안에서도 고래사냥이 있었다는 것을 3천년 전의 함경북도 굴포리 서포항 유적에서 발굴된 고래뼈로 된 노(櫓 whalebone row)에서 증명이 된다. 

 

그 바로 위 연해주에서 발굴된 2천 5백년 된 코리안 쪽구들 온돌은 알류산 열도의 알라스카 본토에 연결되는 아막낙 섬(Amaknak Island)에서 발굴된 3천년 전의 코리안 쪽구들에 이어진 유적이 된다.

 

아막낙 섬에서 고래뼈 탈(whalebone mask)은 함경도 서포항 유적의 고래뼈 노(whalebone row)에  지리적으로 이어지는 고래 이동로를 석연하게 보여주는 유적이다. 아막낙 섬의 고래뼈 탈은 3천년 전 코리안 쪽구들 온돌(Ondol) 발굴과 함께 같은 온돌터에서 발굴되었다는 사실을 필자의 끈질긴 추적과 리서치로 알아냈다. 그 고래뼈 탈의 발굴 사실은 필자로 하여금 결정적으로 코리안들이 아메리카 신대륙발견론을 주장하게 한 모티브가 되었다. 고래를 따라 동북아시아 태평양 연안을 거슬러 코리안들이 '비치 투 비치' 루트(The Rout of the Beach to Beach)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을 고고학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증거들이 연이어져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동해에서 겨울을 지내고 다시 알라스카로 돌아가는 고래는 귀신고래이다. 귀신고래는 앞선 글들에서 언급했듯이 조상이 고래로 환생하여 돌아온다는 선사시대 고래잡이들의 조상숭배와 고래토탬의 연결에서 비롯된 우리 민족의 고래칭호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귀신고래는 그 색갈이 회색이기 때문에 영어로는 그래이 훼일(Gray Whale)이라고 한다. 이 귀신고래가 동해 울산 반구대 인근에서 반환하여  한반도 연안을 따라 올라가면서 함경도를 거치고 다시 연해주 연안을 따라 오호츠크해로 올라간다. 

 

귀신고래의 또 한 그룹은 알라스카해에서 아메리카 대륙 연안을 따라 내려가 멕시코의 바하 캘리포니아(Baja California) 반도까지 내려가 겨울을 나고 다시 여름동안 수온이 차가운 알라스카 바다로 올라온다.

  

이러한 귀신고래가 오호츠크해와 알라스카해 사이의 캄차카 반도로 구분되어 있는듯하지만, 사실은 귀신고래는 코리아로도 오가고 캘리포니아로도 오르내리는 알라스카해를 거점으로 하는 고래이다. 이미 귀신고래는 울산 반구대(Bangudae)에서 바하 캘리포니아(Baja California)를 왕복하는 그 장본인이며 '최초의 신대륙 발견 동물'인 셈이다.

 

귀신고래가 빙하시대 이후에 캄차카 반도 동서로 나뉘어졌을지언정 알류산 열도의 아막낙 섬에 진출해 있던 코리안 고래잡이들에 의하여 양쪽 모두를 오르내렸을 것은 물론이다.

 

3천년 전 아막낙 섬 코리안들은 알류산 열도를 역으로 따라 돌아와 쿠릴열도로 사할린으로 연해주로 내려와 반구대 동해안까지 쉽게 내려올 수도 있었을 것이며, 동시에 아막낙 섬에서 알라스카 연안을 따라 뱅쿠버 와카산 인디안 유적의 고래 암각화를 그리면서 캘리포니아 해안을 따라 내려가 멕시코의 바하 캘리포니아까지 어렵지 않게 고래를 따라 오르내렸을 것이다. 아래쪽에 지도가 첨부되어 있지만, 알라스카해에서 바하 캘리포니아의 막달래나 베이쪽으로 귀신고래가 내려갈 때 알류산 열도를 관통하는 지점이 아막낙 섬 옆으로 오르내린다.

 

그래서 반구대 - 아막낙 - 막달래나는 거대한 초생달모양이 되며 그중 아막낙 섬은 반구대와 막달래나 지점의 최상부가 된다. 그러니까 태평양 동서 양쪽 연안을 따래 오르내리는 귀신고래의 중간 분리대는 캄차카 반도가 될지언정 고래잡이들은 아막낙 섬이 된다는 것은 지형적으로 양쪽을 오갈 수 있도록 알류산 열도가 캄차카 반도에 이어지고 곧 쿠릴열도에 이어지는 동시에 아막낙섬 동쪽으로는 바로 알라스카연안이며 아메리카 대륙 연안을 따라 내려갈 수 있는 정점이 되는 것이다. 

 

 

아막낙 섬 코리안들

 

↗↙       ↘↖

 

                         (울산)  반구대             막달래나 베이 (바하 캘리포니아)

 

 

이러한 구도를 가진 고래이동을 따라 움직였을 아막낙 섬의 코리안들은 중간 기착지로 서로는 연해주와 함경도 서포항이 되었을 수가 있고, 동으로는 뱅쿠버 섬의 와카산 인디안 고래암각화를 남겼을 것이다.

 

멕시코의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와 한반도는 고래의 반환 반도라는 면에서 사이즈까지 엇비슷 유사하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울산 반구대 인근에는 '범고래 등지느러미' 같은 영일만 반도가 있다.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에도 영일만처럼 작은 막달래나 배이(Makdalena Bay) 반도가 마치 '범고래 등지느러미'처럼 나와 있다.

 

*'범고래 등지느러미'를 닮아 있는 포항 영일만 호미곶 관광지

 

이제는 영일만 호미곶이 있는 작은 반도는 인근 울산 반구대 고래 암각화의 역사적 의미와 함께 '토끼꼬리'가 아니라 '범고래 등지느러미'라고 부를만 하다. 한반도를 호랑이로도 상징화하지만 범고래 모양이 오히려 더 야심만만한 세계적인 새로운 이미지가 된다. 귀신고래가 알라스카로 올라가 아메리카 대륙 연안을 따라 내려간 울산 반구대 반대편인 멕시코의 바하 캘리포니아(Baja California)도 반도이다.

 

*한반도의 태평양 반대편에 있는 바하 캘리포니아(Baja California) 반도 (멕시코) 

포항 호미곶과 같은 이곳 작은 반도 지역인 막달레나 베이에 귀신고래가 나타난다.

귀신고래를 비롯하여 대왕고래(blue whale)와 혹등고래(humpback whale) 등의 반환지점이다. 

  

울산은 멕시코의 바하 켈리포니아의 귀신고래가 나타나는 막달레나 배이(Magdalena Bay)와 자매결연을 맺어야 한다.

 

한반도에서 전통적으로 수도를 제외하고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 울산 반구대가 있는 영남 지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면 고래때문일 것이다. 미국쪽 L.A.를 비롯하여 캘리포니아주에 코리안들이 많이 거주하는 선사시대적 상징은 울산 반구대와 바하 캘리포니아의 고래이주 연결의 운명적인 이동이라 할만하다.

 

귀신고래 이동로를 보면 선사시대 코리안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에 갔다가 고래를 따라 Far East 코리아로 돌아왔을 수 있다는 충분한 개연성을 보여준다. 더불어 'Far West'라 할만한 멕시코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까지도 오갈 수 있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이 되는 것이다. 돌아오지 않고 그들이 내륙으로 들어가 오늘날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주요 원주민으로 살아갔을 수 있다는 그 환경을 제공해 주고 있는 것이다. 

 

고래잡이들이 연안을 따라 고래들이 이동을 하는 것을 따라 움직인 것은 반구대 코리안들이 울산 인근 한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하는 중요한 대목이다. 귀신고래들이 오랜 초기 선사시대 동안 사람이 살지 않고 있던 아메리카 신대륙에 오가는 동안 극동(Far East)의 선사시대 코리안들이 고래를 따라 알라스카까지 동아시아 태평양 연안을 오르내리면서 아메리카 신대륙까지 쉽사리 왕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코리안 신대륙발견론'의 핵심 근간이다.

 

베링해협을 건너간 아시아인에 대한 그 넓은 신대륙발견 카테고리를 아주 좁게 '코리안 신대륙발견'으로 규정하는 결정적인 요소들이 고래와 관련한 모든 고고학적, 해양학적, 지리학적, 인종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 사실에 대하여 스스로 대단히 흥분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이 글을 쓰고 있다.

 

알라스카의 초기 원주민들이 고래잡이를 하면서 고래를 따라 북미 연안을 따라 캘리포니아를 오갔다는 사실은 이미 아메리카 역사에서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이 글에서 소개하려 한다. 그래서 그 2차적 확대 배경으로 아메리카 내륙 및 남아메리카로 뻗어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막연히 아메리카 대륙의 인디안들의 문화가 코리안 문화와 유사한 것이 아닌 것이다.

 

고래를 따라 알라스카해에서 고래잡이들이 고래를 따라 오르내린 일이 태평양 동안(東岸) 멕시코 캘리포니아쪽에서 벌어졌다는 사실은 태평양 서안(西岸)인 우리의 동해안의 코리안들도 알라스카까지 고래를 따라 오르내렸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며, 결국은 아무도 없던 아메리카 대륙 알라스카에서 북미 대륙 연안을 따라 캘리포니아 연안까지 내려온 그 당사자들이 코리안들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여 멕시코의 바하 켈리포니아 반도(Baja California Peninsular) 지역의 태평양 연안과 걸프 캘리포니아(Gulf California) 안쪽까지 들어가 귀신고래들과 대왕고래(blue whale) 및 혹등고래(humpback whale)도 그 지역에서 겨울을 난 뒤에 여름이 다가오면 뜨거운 수온을 피하여 반환하여 아메리카 대륙 연안을 따라 알라스카해로 올라간다. 울산 반구대 고래암각화에 혹등고래, 대왕고래, 범고래, 귀신고래 등 다양한 세계적인 고래들이 그려져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멕시코의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에서는 20여종의 고래들이 알라스카로부터 내려온다. 그중 막달레나(Magdalena) 지역은 귀신고래 출현지역의 중심지이며, 혹등고래와 대왕고래는 그 반도의 안쪽 코르테즈(Cortez; Bahia de los Angeles)가 그 중심지역이다.

 

매년 겨울동안 수천 마리의 귀신고래가 베링해협과 축치 해 인근에서 6천마일(또는 1만 마일) 거리의 연안을 따라 헤엄쳐 내려와서 바하 캘리포니아의 태평양 연안의 따뜻한 바닷물을 향하여 내려오는 것이다. 12월 중순에서 3월까지 스캠몬 라군(Scammon's Lagoon)은 이들 거대한 젖먹이 동물들의 목적지가 되며 연간 어미고래와 새끼고래를 합하여 1,500마리 정도가 이곳으로 내려온다.

 

More than 20 species of cetaceans spend time around Baja. Grays breed and calve in the lagoons along the Pacific. Bahia Magdalena is a center for gray whale observation. Humpbacks and blues breed in the Sea of Cortez; Bahia de los Angeles is the center there. Every year thousands of California gray whales migrate 6,000 miles from the cold waters of the Bering and Chukchi Seas to the warm waters of Baja California's central Pacific coast. From mid-December through March, Scammon's Lagoon is the destination of the largest number of these magnificent mammals, approximately 1,500 (including newborn calves) every year.

 

여기에서 귀신고래의 이동과 베링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잘 알려진 내용을 번역 소개해 놓고자 한다. 먼저 귀신고래(GRAY WHAEL)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자. 이 내용은 아래 사이트에서 필자가 번역한 것이다. http://ak.aoos.org/op/eo/index.php?act=mammal_map&stage=2&name=&map=N&info=gray_whale.php

 

 

귀신고래(GRAY WHALE)

 

지리적으로 귀신고래의 왕래지는 각각 서태평양(코리아)과 동태평양(캘리포니아) 두 그룹으로 나뉘어진다. 캘리포니아 귀신고래들은 바하 캘리포니아와 베링해, 축치해(Chukchi sea) 사이의 거리인 1만마일(16,000km)을 오간다. 이러한 고래 이동로는 포유류 가운데 가장 먼 이동 거리의 하나이다.

 

There are two geographically isolated populations, the western Pacific (Korean) and the eastern Pacific (Californai) groups. The California group migrates from Baja California and the Bering and Chukchi seas, a roundtrip of over 10,000 miles (16,000km). This distance is one of the longest migrations of any mammal!.

 

graywhalecoast.jpg

*귀신고래(gray whale) 이동로

코리아에서 멕시코 캘리포니아만 바하(Baja)까지.

 

(필자 역주: 위의 귀신고래 이동로를 보면 동해에서 오호츠크해로 이어져 알라스카해로 연결되고 있다. 선사시대에서 20세기초까지의 기준으로 보면 동해안에서 귀신고래는 대륙에 붙어 이동하기 때문에 일본열도쪽이 아닌 한반도와 연해주를 따라 오호츠크해로 올라간다. 사할린에서 쿠릴열도로 알류산 열도로 이어지거나 오호츠크의 캄차카반도 연안에서 알류산 열도가 이어진다. 선사시대에 일본은 거의 없다. 8세기에도 당나라에 가는 일본 조공선들도 신라 배를 타고 갔을 정도다.

 

일본에서 선사시대 고래뼈 관련 유적이 나타나지 않고 있으나 함경도 굴포리 서포항 유적에서 발굴된 고래뼈로 된 노(櫓)는 선사시대 고래들이 동해안을 따라 대륙 연안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현대문명에 접어들어서 현재는 바다 오염 및 잠수함 소음 등의 원인으로 동해 고래 루트가 약화되어져 가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고래 이동로

코리안들이 많이 사는 L.A. 연안을 거쳐 내려간다.

 

(*역자 해설: 위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알라스카해에서 고래들이 알류산열도를 통과할 때에 3천년 전 코리안 온돌이 발굴된 아막낙 섬(Amaknak Island) 옆으로 통과한다. 귀신고래가 통과하는 이곳을 우니막 패스(Unimak Pass)라고 한다. 아막낙 섬에서 코리안 온돌과 고래뼈 탈이 발굴된 것은 동해안으로 돌아가는 코리안들이라기보다 겨울철 바하 캘리포니아에 내려가 있다가 여름 동안 보다 차가운 아막낙 섬으로 돌아온 코리안들일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철새 아닌 철고래의 삶은 여름별장 겨울 별장을 따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중간 기착지로 보자면 사철별장이 있었다고 해야 한다. 그래서 서양의 어떤 학자들은 고래잡이들이 연간 5곳의 거처지가 있었다고 말한다.)   

 

Magdalena Bay

*멕시코의 바하 켈리포니아 섬의 막달레나 배이(Magdalena Bay)에서 귀신고래(gray whale) 관광을 하고 있는 사람들

(L.A Times)

http://travel.latimes.com/daily-deal-blog/index.php/loreto-mexico-cozy-u-5402/

 

*한국계 귀신고례(Korean gray whale)로 분류되어 있는 귀신고래가

작년 사할린 연안에서 목격된 것. (연합뉴스)

http://blog.hankyung.com/denim977/71426

 

*울산 귀신고래바위의 다른 각도에서 찍은 장면.

 

(*역자 해설: 세오녀와 연오랑이 타고 갔다는 바위는 작살잡이가 올라타던 고래였을 것이며 그 본래의 사실은 고래잡이 배를 타고 현해탄을 건넜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고래잡이들은 파도에 밀려 먼 바다로 휘말려 나갔을 때 노아 방주에서처럼 까마귀를 날려보내 육지쪽이 어딘지를 알아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까마귀를 배에 싣고 다녔을 것이다. 세오녀 연오랑은 아마도 무속적 직위를 가진 작살잡이였을 수가 있다. 알라스카 인디안들의 고래토템폴을 보면 고래 등에 탄 작살잡이 '처용얼굴'이 'Thunderbird'인 까마귀 또는 독수리를 함께 새기고 있다.)

 

*알라스카 전통의 고래 토템 폴(whale totem pole)

위에는 사람 얼굴과 태양새(Thunderbird)가 있다.

'까마귀'를 데리고 다녔을 연오랑과 세오녀가 '바위(고래)'를 타고

바다를 건넌 이미지는 고래잡이 이미지라고 할 수 있지 않는가. 

 

태평양 서쪽(아시아쪽) 연안의 귀신고래들의 이동에 대해서는 사할린 섬 위쪽의 오호츠크해에서 여름을 보내는 것 외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겨울에는 그들이 남지나해까지 따뜻한 바다를 찾아 내려가는 것 같다.

 

Little is known about the western stocks migration, though it is known they summer in the Sea of Okhotsk off the Sakhalin Island. They are likely to travel south to warmer waters in winter, possible off of southern China

 

캘리포니아의 따뜻한 연안에서 겨울을 보낸 뒤에 귀신고래들은 연안을 따라 북향하는데 2월에서 시작하여 5월까지 걸린다. 4-5월에 우니막 패스(Unimak Pass: 아래쪽 지도 참조)를 지나 그들은 베링해로 들어가 브리스톨 만(Bristol Bay) 연안을 따라간다. 5월 또는 6월 귀신고래들은 세인트 로랜스 섬에 도착하는데 60미터 이하의 얕은 물인 그곳에서 지낸다. 그러다가 10월 중순이 되면 고래들은 앞서 북쪽으로 올라오던 길을 따라 남쪽으로 다시 이동해 내려간다. 그들이 바하 캘리포니아(Baja California) 지역으로 12월이나 1월에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귀신고래들은 연안 근처 얕은 바닷물에서 주로 다니며 해안에서 몇마일 이내에서 주로 발견된다

  

After wintering in the warm coastal waters of Baja, the grey whales will move north, following the coast, starting in late February to May. Passing through Unimak Pass in April and May, they enter the Bering Sea and follow the coast of Bristol Bay. In May or June they arrive at St. Lawrence Island, where they feed in the shallow waters (less than 200 feet (60m)). The whales will then move south again in mid-October, following the route they took north. They return to Baja California in December and January. Gray whales are shallow divers and can usually be found within a few miles of the coast.

  

Unimak_Pass.jpg 

*우니막 패스(Unimak Pass)의 위치

 

위의 '귀신고래'에 관한 번역문을 통하여 아막낙 섬은 단순하게 최대의 고래 서식지의 하나에 더하여 코리안들과 관련된 귀신고래들이 그 바로 아막낙 섬 옆인 '우니막 패스'를 통과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막낙 섬과 코리안과의 관계는 이제 3 가지로 늘어난 것이다.

 

      아막낙 섬의 코리안 관련 3대 요소 

 

      1. 3천년 된 온돌(Ondol)

      2. 3천년된 고래뼈 탈(whalebone mask) 

      3. 코리안과 관련된 귀신고래 통과 해협인 우니막 패스(Unimak Pass)

 

코리안 온돌이 발굴된 아막낙 섬 오른쪽이 귀신고래가 통과하는 곳이다. 그러니까 대륙에서 첫번째로 고래가 지나다닐만한 아막낙 섬에 코리안들이 자리를 잡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았을지는 모르지만 그 중 집터 10곳이 발굴되었다. 고래잡이를 하려면 암각화에서 5척 정도의 배에 10여명씩 타면 최소한 장정 50여명 이상이 사는 동네가 되려면 50채 이상의 집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막낙 섬은 고래잡이 어업으로 선사시대나 지금이나 알류산열도 2백여 섬 가운데 최대의 인구밀집지역이다.   

 

코리안 온돌이 발굴된 아막낙(Amaknak) 섬은 현지에서 '엄마낙(Umanak)'이라고 발음하기도 한다. '엄마'가 낳은 것이 반구대 사투리로 '알라'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알래스카'라고 하지 않고 '알라스카'라고 쓴다. '엄마'에 대한 '알라'이니까. '알라스카'는 속된 말로 '알낳았을까' 또는 '알았을까'처럼 들리는 재미있는 발음이 된다. 이것과는 다르나 서양인 아메리고에서 나온 이름이지만. '아메리카(America)'도 '엄마리이까'로도 풀수 있다. '엄마낙' 아막낙 섬의 아들이 '아메리카 대륙'이고 그 아메리카 대륙이 아막낙 섬을 부르는 소리가 '엄마리이까?' 하고 물어보는 것 같은 것이 '아메리카(엄마리이까)'이다.

 

이런 유우머는 심각한 글 속에서는 그저 장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이와같은 중요한 주제로 강연할 때 유용하게 분위기 잡는 방법이 된다. 아메리카 대륙 명칭을 콜럼버스 이름을 바탕으로 그저 콜롬비아라고 하지 않고 콜럼버스보다 뒤에 아메리카 대륙을 밟은 아메리고에서 아메리카로 이름지어진 것은 운명적이다.  아래 번역문에서 볼 수 있는대로 바이킹들이 처음 아메리카 인디안들을 만났을 때 그들을 '야만인'이라는 뜻으로 '스크라엘링(Skraelings)'이라고 불렀던 것에 비하면 재미있는 명칭 풀이라고 할만하지 않는가?

 

아래 글은 미국인 노르만 챈스(Norman Chance)가 쓴 'Exploring the Past: An archeological journey'의 웹사이트 전문을 필자가 번역한 것이다. 그 전체적인 내용이 객관적으로 아시아인들이 베링해협을 건너갔으며 나중 10세기 때에 유럽의 바이킹들이 왔다가 몇 세기 후에 콜럼버스가 등장한 배경을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바이킹들이 10세기 왔다는 그린랜드도 아시아인 인디안들이 먼저 갔다는 사실을 밝혀놓고 있다.

 

 

 - 오두의 신대륙발견 번역 -

 

 

 Exploring the Past: An archeological journey

 과거로의 탐험: 고고학적 여정

 

                                         By 노르만 챈스(Norman Chance)

 

 

http://arcticcircle.uconn.edu/HistoryCulture/journey.html

 

모든 북미 학교 아동들에게 시베리아 북극에 대한 교육을 한다. 시베리아 이누이트들(에스키모의 한 계통)이 그 지역에서 거주하면서 오랫동안 북극의 환경에 적응해왔다. 이들 초기의 사람들이 미국의 반만큼의 거리로 벌어진 베링해협의 '대륙간의 다리'인 버린지아 땅을 건너 신대륙에 들어왔다. 신대륙에 이들이 건너오기 전의 '구대륙'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지만 고고학적인 유적 유물들이 트랜스-바이칼 시대인 13,000 - 25,000년 전의 바이칼호수 지역으로부터 발견되었다는 사실이 있을 뿐이다.

 

Given these environmental limitations, present day Inuit have met this challenge with ingenuity and skill. Yet they followed long after the first inhabitants of the region. These earlier humans entered the New World by way of Beringia, an intercontinental land 'bridge' half the width of the United States connecting the region of Bering Strait with Siberia. We know little of human antiquity in this northern sector of the Old World, although archeological remains from the Lake Baikal region of the Trans-Baikal date as far back as 13,000 to 25,000 years ago.

 

러시아 스텝-툰드라 거주민들은 빙하시대 네안데르탈인들이 북극해 인근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현재의 호모 사피엔스일 뿐이다. 말타(Mal'ta)는 이르쿠츠의 현대적인 도시 근처의 앙가라 강 지역에 잘 알려진 고고학적인 유적이다. 그곳에서 거대한 동물 뼈와 순록 뿔로 구조를 만들고 가죽 또는 이끼 잔디로 덮어 지은 겨울용의 반지하식 움막들이 많이 발굴되고 있다.

 

The residents of the Russian steppe-tundra were not northern reminants of Ice Age neanderthals, but contemporary homo sapiens. Mal'ta, one of the most well-known archeological sites located on the Angara River near the modern city of Irkutsk, contains numerous winter semi-subterranean houses constructed of large animal bones and reindeer antlers, covered by skin or sod exteriors.

 

듀크타이 동굴과 같은 다른 동북 시베리아 유적이 1967년 발굴되었는데 맘모스나 머스크 들소들이 양날의 창끝이나 화살촉 및 스크래퍼 등과 함께 발굴되었다. 스크래퍼의 경우 그 동물들을 잡아 각을 뜰 때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곳의 탄소방사 측정 연대는 14,000 - 12,000년 전의 것으로 나타났다.

 

Other northeast Siberian sites such as that of Dyukhtai Cave, excavated in 1967, turned up mammouth and musk-ox remains in association with quite distinct bifacial [flaked on both surfaces] spear points, arrow points, and scrappers, the latter probably used in butchering. Highly reliable radiocarbon dates for this latter site range between 14,000 and 12,000 years ago.

 

보다 최근의 고고학적 그리고 유전학적 연구들에 의하면 이들 아시아인들의 선조들이 신대륙에 왔을 지리적 기원 및 그 시기에 대해서 다양한 연구를 내놓고 있다. 동북아 원방인 베링해협 연안에 1만8천년전부터 석기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것이 분명하며 아마도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였을 것이다.

 

More recent research both archeological and genetic, has led to numerous speculations as to the geographical origin and time of arrival of these Asian ancestors to the New World. Almost certainly there were Stone Age peoples at the outer frontiers of northeast Asia along the shores of the Bering Sea by 18,000 years ago, and perhaps much earlier than that.

 

이들이 베링해협의 버린지아를 어떻게 건넜을지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실제로 역사시대에도 알라스카의 유픽 에스키모인들은 양쪽 대륙 사이의 베링해협을 가죽부대 배로 왕래를 해왔기 때문에 더 옛날 사람들이 어떻게 건너다녔는지를 잘 알 수 있는 것이다. (역자 주: 가죽부대는 수렵시대에서 유용한 강 및 연안 항해 수단이었다. 선사시대 수렵을 하던 코리안들이 쿠릴열도나 알류산 연도의 징검다리 섬들은 가죽부대로 그냥 더 손쉽게 건너다닐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How they crossed is not difficult to imagine. Indeed, even in historic times, the Yup'ik Eskimo of Alaska have gone back and forth between the two sides of the Bering Strait by skin boat, so it is easy to envision earlier water crossings.

 

25,000 - 14,000년 기간에 베링해협은 그저 육지로 이어진 땅이었기에 육지 중심으로 살았던 초기 선사시대 시베리아인들에게는 아직 배라고 할만한 것을 사용할 필요성이 덜했을 것이다. 마지막 빙하시기의 혹독한 추위로 바닷물이 얼음이 되어 얼면서 해수면이 떨어지고(170미터 아래로) 바다밑에 있던 땅인 버린지아(Beringia)가 드러났다.

 

Yet, boats were probably not needed [or available] to these land-based Upper Paleolithic Siberians, for between 25,000 and 14,000 years ago the Strait was mostly dry land, part of a huge northern land mass linking the two continents together. As the intense cold of the last glaciation turned water into ice, the sea level dropped and Beringia emerged.

 

http://www.uppercanadahistory.ca/fn/fn1.html

 

알라스카에 선사시대 북극해 사람들이 신대륙으로 향해 올 때마다 그들은 특별한 목적지를 정해 놓고 온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알라스카의 초기 고고학자인 루이스 기딩스(Louis Giddings)가 말한대로 "그들이 온 것은 단순히 이곳 저곳을 다니는 한 과정의 결과였을 뿐이었고 때로는 그들의 선조들의 영역을 벗어나 사냥을 하는 것이었지만, 결코 주거점지 집을 떠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베리아와 알라스카 사이를 대량으로 건넌 최초의 아메리칸들은 단순히 새로운 수렵지역을 탐험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여 그들의 많은 세대의 후손들이 그 뒤를 이어 점진적으로 건너왔을 것이다. 

 

Whenever the first Paleo-Arctic peoples arrived in Alaska, they had no particular destination in mind they wanted to reach. Rather, as described by Louis Giddings, an early leader in Alaskan archeology, they were simply "existing and adjusting at random to the environment, the sons sometimes hunting beyond the range of their fathers but never really leaving home." To the first Americans, then, the momentous crossing between Siberia and Alaska occuring gradually over many generations, was simply an exploration of a new hunting territory, nothing more.

 

최초의 아메리칸들(The First Americans)

1만 2천년 이상 전에 신대륙은 선사시대 북극해 사람들이 사냥을 계속했을 때 그들의 식량과 의복의 근간이 되는 홍적세 동물군(洪積世 Pleistocene fauna)이 재빨리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후기 위스칸신 빙하와 빙하시대 이후의 초기의 중요한 기후 변화와 함께 버린지아는 다시 바닷물로 가득차서 포유류들은 동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흩어졌거나 방황하다가 죽게되었다. 빙하시대의 끝은 바다로 다시 끊어져버린 버린지아 인근은 심각한 스트레스 시대였음이 분명하고 그 최초의 아메리칸들도 같은 상황을 겪었을 것이다. 몇몇 선사시대 북극해의 고고학적 유적지들이 미국령 알라스카 경계선인 브룩스 레인지 인근 카나다의 유콘 지역과 남쪽 및 서쪽에서 발견되었으나 그들의 생활과 기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Once in the new continent 12,000 or more years ago, these isolated Paleo-Arctic peoples continued hunting the rapidly disappearing Pleistocene fauna that had been their major source of food and clothing. However, with the major climatic changes of the late Wisconsin glaciation and early post-glacial times, Beringia was flooded and the mammal population either moved east and south, or dwindled and died. In what must have been a period of great stress, the first Americans did the same. Though a few Paleo-Arctic archeological sites have been found in the Canadian Yukon near the Alaskan border, the Brooks Range, and to the west and south, little is known about their technology and way of life.

 

아시아에서 건너온 이들을 따라서 여러 시대에 걸쳐 신대륙으로 사람들이 건너왔다. 고고학적, 문화인류학적 및 언어학적으로 수많은 이론들이 제기되면서 현재의 알라스카 원주민들의 선조들은 1만년에서 5천년 전에 일어난 두 다른 이주로 건너온 사람들로 추적되어질 수 있다.  첫번째 이주 그룹은 나-데네(Na-Dene) 언어 계통의 인디안들로서 알라스카와 북부 카나다, 서남쪽 해안의 브리티시 콜롬비아 및 미국의 서남쪽인 아파치족과 나바호족을 비롯한 캘리포니아의 아다바스칸 언어 계통의 사람들을 포함한다. 기본적으로 내륙으로 이동한 사람들은 빙하시대를 지난 초기부터 브리티시 콜롬비아 북서쪽 연안과 그 안쪽으로 넓게 퍼져갔다.

 

Those who followed these people out of Asia appeared to have arrived at several different time periods. While numerous theories have been put forward, extensive studies in archeology, physical anthropology, and linguistics strongly suggest that the ancestors of present-day Alaska Natives can be traced to two migrations occurring 10,000 to 5,000 years ago. The first group, were Na-Dene speaking Indians, a language family that includes Athabascan-speaking peoples of Alaska, northern Canada, British Columbia, and California as well as the Apache and Navajo of the southwestern United States. Basically, an inland population, they moved widely through the interior and Northwest Coast of British Columbia early in the post-glacial period.

 

두번째 이주그룹이 신대륙으로 이동해 온 것은 바다를 통한 항해시대 그룹으로 다소 뒤에 일어났는데 7,000년에서 6,000년 전에 일어났다. 이들 알류트-에스키모 그룹은 에스카-알류샨으로 알려진 언어군으로 알류트와 에스키모로 나누어진다. 에스키모는 이누피아크와 유픽으로 다시 세분되어 유럽의 낭만시대 언어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것들과 유사한 차이를 보여주는 이웃 언어들이다.

   

A second, maritime-oriented group, arrived somewhat later, perhaps 7,000 to 6,000 years ago. This latter "Aleut-Eskimo" group, spoke what is referred to as Eska-Aleutian, a linguistic family separated into Aleut and Eskimo. Eskimo is further sub-divided into Inupiaq and Yup'ik, a difference similar to that found between the romance languages of Europe.

 

 

*아시아로부터 신대륙으로의 이동로

 

 

이들 이누피아크와 유픽인들의 지리적인 경계 구분은 유콘 강 하구의 북쪽인 언알라크리트(Unalakleet) 지역이다. 이누피아크계 방언들을 쓰는 사람들은 서로 알아들을 수 있는 사이로 포인트 바로우 지역에서 동쪽으로 그린랜드까지 뻗어가는 지역에 걸쳐진다. 그러나 바로우 지역의 남쪽에서 얼알라키트까지 많은 방언들은 보다 더 어려워서 그 지역의 이누피아트들에게 그린랜드 스타일의 칼라알리트 방언을 알아듣기 어렵다.

 

The geographic boundary separating these two subdivisions occurs at Unalakleet, just north of the mouth of the Yukon River. Mutually comprehensible dialects of Inupiaq are spoken from Point Barrow all the way east to Greenland [although from Barrow south to Unalakleet, a number of dialects exist making it considerably more difficult for local Inupiat to understand the Greenlandic Kalaallit dialect].

 

에스키모 말을 쓰는 알류트와 이누피아크 및 유픽인들의 골격과 유전학적인 연구들은 이들이 신대륙으로 온 마지막 주자들인 모든 아메리카 원주민들 가운데 대부분이 아시아인들이었다고 말해주고 있다.  에스칼류샨(Eskaleutian; 에스키모 알류샨) 언어 역시 강력한 아시아인의 뿌리를 가지고 있고 특히 멀리 동북 시베리아의 축치 언어를 쓰는 사람들에 연결되어 있다. (역자주: 3천년 전 코리안 온돌이 발굴된 알류산열도 아막낙 섬은 에스칼류산 지역이다) 

 

 Sketelal and genetic studies of Aleuts and Inupiaq and Yup'ik-speaking Eskimo also suggest that they are the most Asian of all Native Americans - and thus the last representatives of this area to come to the New World. Eskaleutian languages, too, show strong Asian roots, particularly among the Chukchi-speaking peoples of far northeast Siberia.

 

 

이누이트인들의 계승자들(Inuit Successors)

 

4천년 전 알라스카 알류트와 에스키모인들이 서로 분류되기 시작했을 때 에스키모인들은 그들 자신의 바다와 육지의 포유류들을 사냥하거나 민물고기를 사냥하는 문화를 수용했다. 이때 시기 이후부터에 대해서는 고고학자들은 북아메리카와 그린랜드쪽의 북극 사람들에 관한 기술적인 발달에 대해서 다소 정확하게 추적이 가능하게 되었다. 알라스카에서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사람들의 다양한 '북부 북극해 시대'가 시작되었는데 찍개(projectile points), 톱니모양 석기(notched pebbles), 긁개(scrappers) 등의 석기시대 도구들을 사용한 사람들이다. 그 뒤를 이어서 '북극해 소형 도구 전통'이라고 말해지는 시대에는 기술적으로 다소 정교한 도구의 석기들을 사용하게 되었다.

 

Sometime prior to 4,000 years ago, the Alaskan Aleut and Eskimo diverged from one another, the latter eventually establishing their own highly adaptable culture largely based on sea and land mammal hunting and salt and freshwater fishing. From this time onward, archeologists have been able to trace fairly accurately the technological development of North American and Greenlandic Arctic peoples. In Alaska, it began with the Northern Archaic period, represented by a considerable diversity of side-notched projectile points, notched pebbles, end scrappers, and other tool types. This was followed by people who developed what is referred to as the Arctic Small Tool Tradition, typified by a technologically sophisticated microblade industry and finely made lithic weapon inserts.

 

또 다른 주요 전통은 노르톤 문화(Norton culture)로서 2천년 전에 시작되었다. 노르톤이란 알라스카에서 가장 먼저 발굴된 고고학적 유적지인 노르톤 만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노르톤 문화의 주역들은 베링해와 시벨리아 축치해 연안 지역의 바다 포유류를 수렵해온 사람들로 배링해를 건너 카나다의 유콘 지역의 펄스 강(Firth River)까지 퍼져간 사람들이다. 먼 북쪽까지 퍼져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노르톤 문화의 전통은 알라스카 지역의 북부 경사진 포인트 호프(Point Hope) 지역의 잘 알려진 이피우타크 유적에서 발견된다.  600호 이상의 큰 마을의 주민들이 초기 북부 알라스카 이누피아트인들의 생활에 관하여 고고학적인 풍부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Another major tradition, the Norton culture, came into being by 2,000 years ago. Named after Norton Bay in Alaska where the earliest sites were found, this sea-mammal oriented population arose along the shores of the Bering and Chukchi Seas, eventually spreading all the way to the Firth River in the Yukon Territory of Canada. Though not commonly associated with the far north, a highly developed variant of the Norton tradition is found in the famous Ipiutak site located at Point Hope on Alaska's North Slope. The inhabitants of this large village of over 600 houses have provided a wealth of archeological information concerning early North Alaskan Inupiat life.

 

같은 시기에 이피우탁크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옛 베링해 문화의 사람들로서 웰스의 페이프 프린스, 세인트 로렌스 섬 및 시베리아 연안에 위치한 다른 바닷가의 연안 마을들에서 그 문화의 전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연안의 육지를 따라 그리고 바다의 포유류를 사냥하는 것으로 정착했다.  현대의 주민들과 문화적으로 유사한 것은 옛것을 발전시키고 새것을 받아들이는 서로 영향을 준 결과이다. 옛 베링해 문화와 연관된 초기 사람들은 카약(qayaq, 혼자타는 가죽배로 오늘날 카약의 원조)과 보다 큰 우미아크(Unmiaq, 여러사람이 타는 가죽배 카약)라는 가죽 배(skin boats)를 여름동안 사용하고 겨울에는 손으로 끄는 썰매를 사용했다. 그들의 집은 추위를 차단할 수 있는 입구 구조를 가진 반 지하식 움막이었다. 이러한 옛 베링해 사람들의 오랜 지속적인 삶은 그 지역에 서식하는 바다 코끼리의 풍부한 어장에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오늘날까지 잘 알려진 그들의 특별한 기술과 솜씨들은 계속하여 개선이 될 수 있었다.  

 

At the same time people were inhabiting Ipiutak, members of the Old Bering Sea culture occupied other coastal villages located on Cape Prince of Wales, Saint Lawrence Island, and the adjacent Siberian shore. They lived permanently on the coast hunting land and sea mammals. Cultural similiarities with modern residents of the area leave little doubt that continuous development from one to the other has taken place. The earlier people associated with the Old Bering Sea culture traveled by qayaq [kayak] and large umiaq skin boats in summer and hand-drawn sled in winter. Their houses were small semi-subterranean dwellings with a highly efficient cold-trap entrance to hold the heat inside. The long-continued residence of these Old Bering Sea people in this region is intimately related to the great abundance of walrus that inhabit the area. Having resolved many problems of subsistence, they were able to devote increasing amounts of time to the development of technical and artistic skills for which they became so well known.

 

비르니르크 사람들은 인근 이피우타크 사람들과 공존해왔는데 결국 북부 경사진 곳으로 이피우타크 사람들을 몰아내면서 알라스카 북쪽의 문화를 장악하게 되었다. 카리보우 삼림 순록과 물고기들의 수렵이 약화되면서 사람들은 바다 포유류 사냥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유가 어떻든 그들과 '둘레(Thule. 한국말 '두레'와 연관될 수 있다)' 사람들은 비르니르크 지역을 넘어 수가 불어나면서 바다에서 뛰어난 수렵자들이 되었다. 기술을 가진 뱃사람들이 된 그들은 그들의 타고난 창조적인 솜씨로 새로운 기술적인 도구들을 만들어서 바다 코끼리와 고래를 사냥하게 되었다. 여자들이 짐승 가죽으로 둘러싸서 꿰맨 큰 우미아크 가죽 보트는 고래사냥에 효과적인 개선을 가져왔다.  

 

The Birnirk people, first coexisting with that of the nearby Ipiutak, eventually replaced them, and went on to become the dominant culture in North Alaska from which today's North Slope Inupiat derive. It may well be that a decline in the availability of caribou and fish forced the people to improve the efficiency of their sea mammal hunting skills. But whatever the reason, they - and the Thule people which grew out of the Birnirk - became pre-emminent hunters of the sea. Skilled boatmen, they applied their creative ingenuity to design new technological devices to improve the hunting of walrus and whale. The large umiaq boat with covering skin carefully sewn together by women, was refined to improve its efficiency in hunting the whale.

 

이러한 고래잡이 배의 선장과 그들의 부인들은 특수 계층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은 리더십과, 제의적인 지식 및 사냥의 용맹성으로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의 기술적인 솜씨가 늘어날수록 그들은 집밖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늘어나 야외용 의상의 개선도 함께 이루어질 수 있었다. 그들의 주거지도 겨울동안 화씨로 마이너스 50 - 60도까지 내려가는 추위를 막을 수 있는 주거지의 입구 구조를 만들게 되었다(역자주: 에스키모의 이글루와 인디안들의 둥근 위그웸의 튀어나온 입구를 생각할 것) . 포인트 바로우, 포인트 호푸 및 와인롸이트 등의 북극해 연안의 마을들은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전통을 가진 주요 고래잡이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되었다.

 

The captains of these whaling boats and their wives, were individuals of high prestige, respected for their skills in leadership and ritual knowledge as well as hunting prowess. As their technical skills increased, they were able to modify their clothing allowing them to remain out-of-doors for longer periods of time. Their houses, too, with the cold trap entrance, improved heating efficiency in winter temperatures which could drop to as low as -50 or -60 degrees. Soon, the Arctic coastal villages of Point Barrow, Point Hope, and Wainwright became major whaling communities which have continued in importance right up to the present.

 

13세기까지 '둘레' 사람들은 수천마일을 떠나 카나다 중동부에서 라보레이도르 연안(카나다 동부해안)과 그린랜드에 걸쳐 정착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거대한 목제 보트를 타고 동쪽으로부터 온 수염을 단 낯선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역자 주: 여기에서 그린랜드에 먼저 간 사람들이 아시안들임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노르스(Norse, 스칸디나비아 바이킹들) 사람들로서 북 대서양에서 그린랜드, 라보르레이도르 연안 및 뉴펀드랜드에 1000 AD에 건너온 사람들이다.

 

By the thirteenth century, the Thule people had traveled thousands of miles building settlements throughout central and eastern Canada into Laborador and Greenland. Eventually, they met strange men with beards who came from the east in large wooden boats. They were the Norse who had crossed the north Atlantic to Greenland, Laborador, and Newfoundland around 1000 A.D.

 

이들 최초의 유럽인들은 '둘레' 사람들을 '스크라엘링(Skraelings)'이라고 칭했는데 그 뜻은 '야만인(barbarians)'이라는 뜻이다. 북아메리카에 온 이들 최초의 유럽인 이주자들은 원주민들의 물개 생산물과 바다동물들의 상아를 위하여 그들의 철제품을 교환하는 무역을 했다. 2백년 후에 이들 초기 노르스 정착인들은 죽어 사라졌다. 그로부터 또 다시 5세기가 흘러 새로운 탐험가들이 나타났는데 러시아와 영국으로부터 북아메리카의 북극해 원주민들과 다시 접촉하게 된 것이다.

 

Calling the Thule people skraelings, ['barbarians'], the first European immigrants to North America regularly traded iron implements for locally made products of seal and ivory. Two hundred years later, these early Norse settlements died out. It took another five centuries before explorers, this time from Russia and England were to renew their contact with the Arctic's Native North Americans.

 

 

*코리안들의 신대륙발견은 그린랜드까지 이어졌을 수도 

 

위의 번역문은 코리안들이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새로운 세계사적인 선언의 기본 인식을 위한 내용으로 올린 글이다. 여기에서 코리안들이 연안을 따라 움직이는 고래 이동선을 따라 알라스카로 갈 수 있다는 객관적인 고래길 따라 가는 고래잡이들의 역사가 카나다 서부 바다 건너 그린랜드까지 '둘레(두레)'의 이름으로 건너갈 수 있다는 배경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알라스카까지 올라간 코리안들은 아막낙 섬의 우니막 패스를 통과하여 멕시코의 바하 캘리포니아 반도까지 고래를 따라 내려오기도 했지만, 알라스카 해협을 통과하여 북극해로 들어가서 카나다 서안의 라보르레이도르(Laborlador) 연안을 따라 아메리카 대륙 서안을 따라 내려왔을 수도 있다.

 

특히 '도르셋(Dorset)' 문화를 그린랜드까지 이동시킨 그 장본인들이 코리안들이었을 개연성이 높다고 할 때 선사시대 고래잡이 코리안들은 신대륙을 넘어 대서양 탐험을 했을 수가 있다. 그리하여 더 멀리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이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노르웨이 알타(Alta) 지역이나 핀란드와 러시아 경계 지역에 있는 백해(White Sea)와 오네가 호수(Lake Onega)까지 갔을 수도 있다.

 

이러한 가설은 고래잡이를 따라 바이킹들이 그린랜드까지 올 수 있었다는 가설이 성립한다면 얼마든지 역으로도 가능한 가설이기 때문에 필자가 제기하는 것이다. 필자가 미국에서 다양한 유럽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이러한 주장을 이슈로 지금까지 대화해본 결과 핀란드의 문화는 코리안 문화와 유사하다고 상당수 유럽출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스칸디나비아의 고대 고분들은 코리안들 고분들처럼 둥근 봉분형(conical mounds) 스타일인 것은 물론 중세기까지 그들의 건축물의 지붕 양끝 망와(치미)에는 동양의 용을 올리고 있다. 그야말로 용마루를 한 그들의 지붕을 보면 바이킹선의 이물과 고물에 용을 새긴 용선(dragon boats)이 어딘가 동양의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

 

필자가 1893년 시카고 콜롬비아 박람회 때의 한국전시관(Corea Exhibit)의 위치를 찾아내 1893 한국전시관복원 운동을 해오면서 그당시 노르웨이인들의 전시관 건물이 11세기 노르웨이 교회건물을 본딴 전시관이었는데 현재는 위스칸신주 리틀 노르웨이(Little Norway)에 옮겨가 전시하고 있는 곳을 코리안 동포들과 함께 버스투어를 이끈 적이 있다. 그곳에서 본 용마루에서 필자는 바이킹들이 동양에 와서 가져간 문화라는 생각과 함께 코리안들이 고래잡이 루트를 따라 스칸디나비아까지 갔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에 관한 필자의 글은 다음 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1893> 위스칸신주 리틀 노르웨이를 찾아서

<1893 역사탐방1-2 > 리틀 노르웨이, 파익스 픽, Effigy Mound 인디언 고분답사

 

*11세기 노르웨이 스타일 건축물. 리틀노르웨이, 위스칸신주 USA

바이킹선의 이물의 용과 관련된 용마루의 모습은 동양적이다. (2004년 5월 필자 촬영)

 

10_061 by m2143815.

*경북 영주 출토 신라시대 용두.

 

위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고래등같은 기와지붕에 범고래 등지느러미 망와(치미)를 올린 코리안들처럼 고래잡이 배의 이물에 고래(용)를 올린 노르웨이인드의 바이킹선의 모습을 중세 노르웨이 건물에서 볼 수 있다.


다음 장에서는 핀란드계통의 바이킹들의 선사시대 고래잡이에 대한 정보를 통하여 선사시대 코리안들이 어떻게 알라스카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고래를 따라 오르내렸을지에 대한 글을 올릴 차례이다.

 

선사시대 코리안들이 먼저 아메리카 신대륙에 건너갔다는 것은 분명한 고고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다만 선사시대 핀랜드인 바이킹 고래잡이들에 대한 서양인들이 선재 가설들을 제시해 왔으나 동아시아에서는 아무도 신대륙에 고래잡이들이 갔으리라는 이론을 지금까지 제기한 바 없었다. 여기에 필자가 선사시대 코리안들의 고래잡이 루트를 통하여 '코리안 신대륙발견론'의 기치를 올린 것은 선사시대 바이킹들의 가설들에 대하여 한판 대결이 될 것이다.

 

특히 바이킹들의 깃점이 핀랜드와 러시아 경계선의 백해(White Sea)와 오네가 호수(Lake Onega)에서 기원한다고 보는 대서양 바이킹들과 울산 반구대를 기선으로 하는 선사시대 코리안 뱃사람들의 '태평양 바이킹들'의 대결은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노키아와 한반도의 삼성 LG의 대결처럼 흥미진진한 신대륙을 향한 멋진 배지기 씨름 한판이 될 것이다.

 

선사시대 고래잡이들이 누가 먼저 신대륙 아메리카에 갈 수 있었을지에 대한 경쟁으로 유럽인들이 강조하는 바이킹 신대륙 발견론에 대하여 이제 코리안들이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것은 아메리카 신대륙발견론에서 새로운 카운터 펀치가 될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핀란드 선사시대 글을 쓴 사람 중에는 고래잡이를 나갈 때에 정화의식으로 핀란드인들의 전통인 사우나를 들먹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핀란드의 사우나는 유명하다. 그러나 코리안 '사우나'로 볼 수 있는 '황토 온돌방'도 아막낙 섬에서 3천년 된 코리안 온돌이 4기나 발굴됨으로써 선사시대 때 코리안 온돌은 고래사냥과 함께 유명하다. 뜨겁게 하고 사는 것 코리아냐 핀란드냐 그것이 문제로다! 분명한 것은 코리아는 3천년 전의 고고학적인 온돌터가 발굴되었으나 핀란드는 그런 유적이 없이 이론 뿐이라는 것에서 이미 선취점이 코리아에 있다는 사실이다.

 

핀란드 고래잡이들의 사우나 정화의식의 가설은 코리안 고래잡이들은 '황토방 온돌'이 고래잡이 정화의식용일 수 있다는 방증은 온돌의 기원이 고래사냥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는 새로운 해석을 내릴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아막낙 섬에서 발굴된 3천년 전의 온돌은 고래잡이 나갈 때 정화의식의 의미가 함께 있던 온돌방의 기원에 그 어떤 배경을 찾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구들고래에 자는 코리안들이여! 고래등 같은 기와지붕 아래에서 고래고래 고함치는 고래의 신대륙발견론의 높은 숨쉬기 물기둥을 보라! 태평양에서 코리안들이 배를 타고 신대륙을 향해 가던 그 선사시대 기상은 고려시대 때까지 신주(神舟)로까지 남아졌고 조선시대 거북선으로 이제 세계 최대 조선국가로 향해 왔다. 그 피가 딴데로 가겠는가. (10/28/09 오두)

 

  

 

 

 

 

 

 

 

출처 : 오두막 위에 서린 무지개
글쓴이 : 오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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