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4소시집
나 어떡해
逸麗
들에는 황금 벼 수채화
하늘에는 목화송이 수채화
이 가을 대풍년에
나 어떡해
넋을 잃은 논길에
메뚜기도 쓰러지고
고추잠자리도 쓰러지고
꽃뱀도 쓰러지고
백 나팔꽃은 몸을 숨기고
나 어떡해
쓰러질 자리 좀 줘봐
저 황금 밭이면 좋아
저 하늘 목화밭이면 좋아
꽃구름아, 세력만 넓히지 말고
황금 벼야, 바람 따라 부딪치기만 하지 말고
딱 한 자리만 양보해줘
목이 타
진리도 필요 없어
부와 명예도 필요 없어
그 자리 좀 줘봐
전원 교향곡도 필요 없어
시라는 허울도 필요 없어
익을 대로 익은
고개 숙인 황금 벼 좀 봐
황금 벼 옆에 시와 진리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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