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잠
고 상
할 일은 궁리만 하다
산과 들에 걸어 둔 채 떠돌아다녔다
산에 가끔 살구 씨 뿌리고
산수화 심으며 산을 갖으려했으니
평생을 쌀 한 톨 씩 모아
남을 위해 살고 시신까지 기증하는
독거할머니께 죄송스럽다
새 봄에는 산을 가꾸는 성실한 주인공으로
살고 싶어 깊게 겨울잠 자야겠다
헛웃음 지으며 삶의 울타리만 헤매고 다녀
할머니께 송구스럽고 미안하다
땅 속에서 흙의 진리 마시며 겨울잠 잘 자는
동토의 하얀 자작나무가 되고 싶다
가지마다 해골이 선연히 비치지만
겨울잠 자고나면 꼿꼿이 부활하는
자작나무 숲이 되고 싶다
땅 속에서 흙의 말씀 씹고 삼키고 나면
고구려 피 흐르는 소처럼 일 하도록 새봄에는
할머니 천사께서 여의주 물려주실 것이다
반성과 깨달음으로 얻은 씨 뿌려 가꾸는
진정한 흙의 머슴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