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 제 : 2007. 8. 1(수) 흐리고 비/ 강풍
누구랑 : 아내와 둘이서
코 스 : 백담사 - 오세암 - 마등령 - 공룡능선 - 무너미재 - 희운각 대피소
시 간 : 10:05 백담사 - 11:55 오세암 - (점심) - 14:07 마등령 갈림길 - 15:36(마등령 1.7km 지점) - 16:19 (마등령 2.1km 지점) -16:51(마등령 2.7km 지점) - 17:24(마등령 4.1km 지점) - 18:10 희운각대피소 (아내와 경치 구경하면서 사진도 찍고 쉬엄쉬엄 걸었으므로 소요시간은 큰 의미가 없음)
산행을 다니면서 마음에 품었던, 언젠가는 아내에게 설악의 절경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바램.
그러나 그 기회는 쉽사리 만들어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내의 산행 내공과 체력이 뒷바침 되어야 했고, 둘이 함께 시간을 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차에 이번 여름휴가를 맞아 그 소박한(?) 바램을 실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다른 조건(체력과 시간)이 해결되자 이번에는 날씨라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휴가 전반부를 울산근교 및 처가쪽 방문으로 보내고 8월의 첫날 새벽에 출발해 설악으로 달리는 내내 최종 결정을 못 내린 상태였다.
비소식이 있는데 아내를 대동하고 어느 코스를 오를 것이며, 어디서 잘 것인가?
중앙고속도로 홍천 나들목을 빠져나와 인제를 거쳐 원통을 지날즈음 대략의 산행코스를 결정했다.
일단 백담사를 들머리로 해서 오세암을 거쳐 공룡능선을 탄 다음 희운각 대피소에서 자든가,
구곡담계곡(내심은 용아장성능선)을 거쳐 봉정암을 지나 소청대피소에서 자는 것을 택하되 그 또한 수렴동 갈림길에서 최종 결정하기로 한다.
내려오는 코스는 그 반대로 하면 원점회귀 산행을 하면서 두 개의 코스를 다 걷게 된다.
사전 검토와 계획이 철저해야 하는 것이 산행의 기본임을 감안하면 주차장에 도착할 때까지도 결정을 미룬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이 나홀로 산행의 묘미이자 장점이라 하겠다.
또한 어느 코스를 택하든 그만한 정보와 산행 지식은 갖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대강의 산행일정과 코스를 정하자 마음이 급해진다.
만약 공룡능선을 탄다면 좀 더 멀기에 어둡기 전에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해야 하고, 언제 비가 쏟아질지 모르는 날씨가 걱정이다.
용대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서둘로 짐을 꾸린다음(그때까지 배낭조차 제대로 꾸리지 않음~@@~) 백담사행 셔틀버스를 탄다.
편도 1,500원/ 소요시간 약 12분/ 배차간격이 짧아 편리하긴 한데 독점노선이라 운임이 좀 비싼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담사 정류장에 내리자 두리번거릴 여유도 없이 날랜 걸음으로 출발이다.(10:05)
아내의 걷는 실력은 검증된 상태라 하겠는데 오늘따라 더 날렵하게 느껴진다.
이런 출발이라면 걱정 한시름을 덜어도 되겠다.
한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서 영시암을 지나고 갈림길에서 최종 결정을 할 순간이 다달았다.
오늘 빡시게 걷고 내일 수월하게(?) 걷든지(공룡코스), 오늘 수월케 걷고 내일 빡시게 걷든지(구곡담코스)
아내에게 선택하라고 하자 주저없이 힘이 넘치는 오늘 공룡능선을 걷자고 한다.(다음 날 악천후를 만났으니 탁월한 결정이었다.)
백담사를 출발한지 약 1시간 50분 걸려서 오세암에 도착했다.
날씨는 맑지도 않고 비가 오지도 않는 어정쩡함, 아니 흐리멍텅한 기분이 들 정도로 시야가 흐릿한 상태다.
주변 산세가 빼어난 곳에 자리잡은 오세암에서 첫 휴식을 취하는 동안 아내는 법당에 들어가 무사 산행을 기원하고 나온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아내들이 단골로 기원하는 것이 무엇일까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런데 기도가 잘못된 것인지, 정성이 부족했는지 기도에 대한 응답이 거꾸로(?) 나타났다.
휴식을 마치고 출발을 하는데 아내는 하산하는 길로, 나는 마등령 오르는길로 접어들고는 서로 따라오겠거니 생각하여 하마터면 이산가족이 될 뻔 한 것이다.
순식간의 일이어서 좀 더 지체되었다면 더 큰 낭패를 당할뻔 했으나 일찍 알게되어 불상사(?)는 막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주체하지 못하는 단점이 하나 있다.
기껏 모시고 온 아내보다 카메라(사진찍기)를 더 챙기다 보니 왕왕 생각지도 못한 헤프닝이 벌어진다.
서로 엇갈림이 발생한 이유도 카메라 들고 주위 풍경을 살피느라 아내의 길 물음에 당연히 올라가는 길로 생각하고, 건성으로 응 하고 대답을 해서 발생한 일이었다.
하찮은(?) 일로 언짢아진 감정을 아래 사진, 알콩달콩한 바위가 건너다 뵈는 소나무 아래서 점심을 먹으며 풀었다.
늘 경험하는 바이지만 그래서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 했나보다.
이윽고 마등령 갈림길에 올라섰다.
탄성이 절로 나오게 되는 탁트인 조망과 장엄한 공룡능선의 풍광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다행히 흐리멍텅한 날씨가 강풍 덕분인지 맑지는 않은 가운데서도 화채능선까지 조망이 가능하니 이만하면 장마철에 대단한 행운인 셈이다.
등산로 양쪽으로는 제철만난 동자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천상화원'을 이루고 있다.
필자가 확실히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앞에 뾰족한 1275봉과 뒤에 북한산 인수봉과 닮은 범봉 두 개다.
나한봉, 천화대, 신선암 등 무너미고개까지 가는 동안 낮익은 이름이 더러 있지만 막상 길을 지나면서는 딱히 지명을 정확히 알 정도는 못된다.
경상도 말로 여가 거고, 거가 여 같은 공룡능선의 암봉을 수 없이 오르고 내리는동안 어림짐작으로 그렇거니 하면서 지날 따름이다.
왠만하면 표지석쯤은 세워두는 것도 서비스가 아닐까 생각하면서 한편으로는 세우지 않는 '깊은 뜻'이 있겠거니 생각해 본다 .
거참, 아무리 보아도 세월과 비바람을 도구로 세월이 빚은 설악의 자태는 인간이 흉내내기 어려운 최고의 걸작 모음이다.
기막힌 풍광에 매료된 아내는 좀 전의 서운함을 잊고, 비로소 남편의 깊은 배려(?)에 진심어린 고마움을 표한다.
비록 천당과 지옥을 오르내리는 듯한 원거리 산행에 지치고, 비까지 내리자 또 원성으로 바뀔지언정...(누가 여자의 마음을 갈대라 표현했을꼬...!)
마등령에서 금강문~금강굴을 거쳐 비선대로 내려가는 방향으로 넘치는 힘을 주체하기 어려웠을까 불뚝 일어선 바위
여기도 저기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벌떡 솟아오른 암봉이 셀 수가 없을만큼 줄을 지어 이어진다.
보는 방향과 각도에 따라 천의 얼굴을 나타내는 암봉과 암릉군들.
가운데 설악골을 중심으로 왼편으로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내려가는 등산로 주변의 암릉군.
건너편은 칠성봉에서 집선봉으로 흘러내린 암봉과 암릉구간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보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멀어지는 공룡능선의 암봉들
(앞이 나한봉이고 뒤에 뾰족한 암봉이 1275봉?)
멀리 거대한 암봉과 암릉으로 이루어진 울산바위.
날씨만 맑았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변화무쌍한 장마철에 이만큼 조망 할 수 있음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바쁜 발걸음을 수시로 멈춰서게 하는 비경
나한봉에서 내려서는 길에 바라다 보이는 1275봉 아래로 잘(?) 복구된 등산로가 보인다.
대략 해발 1,200m 내외의 등로인데도 왼편으로 구름에 가리워진 설악의 주봉 자락이 태산같은 무게로 느껴진다.
저 보이는 곳들을 다 걸어야 한단 말이지?
실인즉 공룡능선은 도상 거리는 그리 멀지 않다.(마등령~희운각 6km)
거리로만 생각하면 대충 세 시간이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십상인데 산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산꾼이 아니고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5시간이 기본이므로 초행자나 걸음이 더딘 일행과 동행이라면 6시간 정도로 시간계획을 넉넉하게 잡아야 낭패를 당하지 않는다.
암봉과 숲의 경계지점을 자세히 보면 등산로가 드러난다.
공룡능선상의 급경사 오르내림 길은 작년 물난리 이후 복구공사를 하면서 '포장도로' 수준으로 만들었다.
1275봉 아래 고개에서 나한봉 방향으로 지나온 길을 돌아다 본다.
마등령 방향으로 바라본 풍경이다.
바로 아래 보이는 등산로는 급경사여서 비만 오면 물골로 변하면서 단골로 파여나가는 곳이다.
작년 수해 복구공사를 하면서 호사스러울 정도로 편하고 안전한 길로 바뀌었다.
대청봉에서 화채봉으로 뻗어나간 화채능선이 시야에 잡힌다.
무너미재가 많이 가까워졌다는 증거다.
신선암으로 이어지는 공룡능선 나머지 구간은 흡사 용아장성능선의 뾰족바위군을 옮겨다 놓은 것 같다.
위에 사진에서 뾰족바위 옆으로 난 길 흔적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전망이 기막힌 곳에 서게 된다.(등산로는 우측으로 내려감)
아래 사진 여러장을 이곳에서 찍었다.
암봉과 나무숲 사이 등산로에 희끗희끗하게 보이는 것은 복구공사용 자재를 헬기로 운반하는 커다라 포대다.
이곳의 유실된 등산로는 아직 복구공사중인데 본래의 길을 폐쇄하고 옆으로 약간 우회하는 '돌포장 길'을 만들고 있다.
범봉과 천화대의 암릉 구간 역시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신선암으로 향하는 암봉 너머로 구름속에 잠긴 대청봉
공룡능선 위로 드러난 암봉만도 대단하지만 저 아래 골짜기까지의 수백길 절벽은 어지러울 정도다.
동전의 양면처럼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을 두루 갖추고 있는 범봉
설악골쪽에서 본 범봉
작은 바위골쪽에서 본 범봉의 아래부분
뒤 돌아다 본 1275봉
이동해 온 거리만큼 앞에 보이던 뾰족바위들이 뒤로 가 있고, 그 너머로 1275봉이 멀어져 있다.
무너미재로 향하는 마지막 봉우리인 신선암
왼쪽 바위 절벽에 도야지가 공기돌을 물고 있는 형상인데 금방이라도 굴러 떨어질 것 같이 위태롭다.
공룡능선과 범봉 갈림길 지점에서 바라 본 용아장성능선과 가야동 계곡 및 서북능선 방향(아래 석장)
범봉과 천화대, 그리고 빗줄기에 가려지는 공룡능선.
이쯤에서 그동안 참아 주었던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비경에 취해 가다서다 한없이 늘어지던 발걸음이 바빠진다.
내리는 비의 양은 그리 많지 않지만, 배낭 카바를 씌우고 우의를 걸치고 번거로움 못지않게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아쉬움이 더 크다.
18:00 드디어 무너미재에 도착했다.
마등령 갈림길에서 쉬엄쉬엄 왔음에도 4시간여 걸렸으니 아내의 걸음 실력이 다시 입증된 셈이다.(필자는 초고에서 6시간이나 걸린 것으로 착각했다가 수정함)
무사히 첫날 산행을 마쳤다는 안도감으로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하여 잠자리를 예약하고 느긋하게 저녁을 준비한다.
무너미재에서 마등령 방향으로 바라 본 공룡능선길 들머리
민간이 운영하는 대피소는 시설은 국립만 못하지만 예약제가 아니어서 예측하기 어렵거나 변동이 따르는 산행시에 이동하기 편한 장점이 있다.
대피소 이용요금은 1인 5천원, 담요대여는 2천원이다.(국립공원 대피소는 7천원, 1천원)
대피소 이용요금은 싼 편이지만 담요는 비싸고, 판매하는 생필품 종류가 다양한 대신 가격이 비싼 편이다.(국립공원 대피소는 가격은 싼 편이나 취급물품 종류가 적다)
희운각 대피소 옆 계곡은 작년 물난리에 '싹쓸이'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는데 교량과 등산로는 복구되어 있었다.
하지만 산사태 및 계곡유실로 인한 복구는 오랜 기간이 걸려야 할 것 같다.
저녁 9시 10분 소등시간에 맞추어 자리에 드는 것으로 아내와의 설악산 첫날 일정을 마쳤다.
잠자리가 편치는 않지만 이렇게라도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음과 무사 산행에 감사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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