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허성우(鏡虛性牛) / 만공월면(滿空月面) 선시 모음
無事猶成事 (무사유성사)
掩關白日眠 (엄관백일면)
幽禽知我獨 (유금지아독)
影影過窓前 (영영과창전)
일 없는 것이 나의 일이니
문고리 걸고 낮잠 조네
깊은 산새가 나 홀로인 줄 알고
그림자 그림자 지면서 창 앞을 지나가네
선시 : 경허
培養靈根 上達枝 (배양영근 상달지)
疾風暴雨 不須垂 (질풍폭우 불수수)
他年高拂 靑雲裏 (타년고불 청운리)
尙有仙笛 過此吹 (상유선적 과차취)
마음 뿌리 가꾸어 가지와 잎에 이르렀으나
빠른 바람 억센 비에 어린 가지 몸살 앓네
뒷날 푸른 구름 속에서 높게 휘날릴 때면
신선의 피리소리 이 곳을 지나가리
선시 : 경허
山自淸水自綠 (산자청수자록)
淸風拂白雲歸 (청풍불백운귀)
盡日遊盤石上 (진일유반석상)
我捨世更何希 (아사세갱하희)
산은 스스로 푸르고 물 또한 스스로 푸르건만
맑은 바람 불고 흰구름 돌아 가네
하루 왼종일 넓은 반석 위에서 놀다가
내가 세상을 버렸으니 다시 무얼 바라리오
선시 : 경허
忽聞人語無鼻孔(홀문인어무비공)
頓覺三千是我家(돈각삼천시아가)
六月燕岩山下路(유월연암산하로)
野人無事太平歌(야인무사태평가)
문득 콧구멍 없는 소라는 말을 듣고
온 우주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랫길에
일없는 시골사람들이 태평가를 부르네
오도송 : 경허
心月孤圓(심월고원)
光呑萬像(광탄만상)
光境俱忘(광경구망)
復是何物(부시하물)
마음의 달 홀로 둥근데
신령스러운 빛은 삼라만상을 삼키네
빛과 만상이 모두 사라졌으니
다시 무엇이 있겠는가
임종게 : 경허
鏡虛本無鏡 (경허본무경)
惺牛曾非牛 (성우증비우)
非無處處路 (비무처처로)
活眼酒與色 (활안주여색)
거울이 비었으니 본래 거울이 없고
소가 깨달았으니 이미 소가 아니라네
거울도 아니요 소도 없는 곳곳에
잠 깨인 눈이여 술과 여자라네
시 : 만공
空山理氣古今外 (공산이기고금외)
白雲淸風自去來 (백운청풍자거래)
何事達摩越西天 (하사달마월서천)
鷄鳴丑時寅日出 (계명축시인일출)
선시 : 만공 ' 鷄鳴丑時寅日出 (오도송)
맨위 '우음삼 (偶吟三)'선시는
경허대선사님이 읊은 선시 수백 수 중에 하나이며,
작가 최인호님이 경허 일대기를 4권의 소설로 담아낸
'길 없는 길'의 집필 동기가 된 바로 그 선시입니다.
우리나라는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오는 시대적 전환기에
외세의 침탈과 주권상실로 이어지던 질곡의 시대를 겪었습니다.
우리나라 근대불교사에 경허대선사가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불교는
참으로 허전하고 황량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경허의 비중이 큰 셈이지요.
경허는 기인이 아니었습니다. 농세(弄世)의 달인 또한 아니었고요.
일제말기 꺼져가던 한국선맥의 중흥조이자 당대의 석학이었습니다.
허지만, 경허의 삶은 파격의 연속이었습니다.
파격을 통해 깨달음의 자유를 시험했고, 명분과 사상의 틀에 안주하기를
거부한 초인이자 대시인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경허의 허물이 감춰지지는 않습니다.
그의 무애행각을 비난하는 시각이 여전히 엄존하고 있는 것,
이 또한 사실입니다.
을사늑약의 올가미가 씌워지던 해, 1905년에
경허는 북녘으로 발길을 돌린 뒤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머리를 기르고 박난주(朴蘭洲)라고 이름을 지어 접장생활로 살기도 합니다.
경허가 왜 삼수갑산으로 몸을 숨겼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습니다.
여여로운 봄날 되십시요.
"불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네 눈 앞에 있느니라."
"눈 앞에 있다면 어찌하여 저에게는 보이지 않습니까?"
"너에게는 너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느니라."
"스님께서는 보셨습니까?"
"너만 있어도 안 보이는데 나까지 있다면 더욱 보지 못하느니라."
"저도 없고 스님도 없다면 볼 수 있겠습니까?"
"너도 없고 나도 없는데 보려고 하는 자가 누구냐?"
(선문답 : 만공선사 법어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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