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2일 금요일 맑음 / 현지여행 11일차
모뉴멘트밸리는 원주민자치구(나바호)로서 서부영화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거나 달력사진을 통해서 눈에 익숙한 풍경들이 많다.
그만큼 이국적인 풍경이 집약돼 있는 곳이다.
그런데 이곳에서의 가족사진이 별로 없다.
그 이유는 머문 시간이 짧았던 것도 있지만 결정적으로는 '이산가족'이 됐던 사연 때문이다.
코테즈에서 출발이 늦었고, 이동거리가 멀어서 도착시간이 다소 늦기는 했어도 모뉴멘트밸리의 상징적인 그림이 펼쳐지는 여기까지는 좋았다.
비용을 좀 쓰기로 하고 마음씨 넉넉해 보이는 현지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서 4륜구동 승합차를 타고 들어가서 그가 일러주는 포인트에서 가족사진도 폼나게 찍고..
다만 해걸음이라서 그늘이 짙게 드리우는 바람에 아직 빛을 받는 부분과 그늘이 지는 부분이 겹치는 바람에 노출을 맞추기가 좀 어려웠다.
뒤에 보이는 바위는 영어 알파벳으로 W V자를 새겨 놓은 듯 선명하다.
가이드 해설이 그럴듯한데 환영한다(Welcom)는 의미란다.
여기도 모뉴멘트밸리의 상징적인 장소다.
다만 해가 지기 전에 전체를 돌아보려면 시간이 촉박해서 촬영포인트까지 이동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그런데 이 다음 이동과정에서 중대한 문제가 생겼다.
우리를 태우고 가는 승합차가 눈구덩이에 빠져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가이드 양반께서 차들이 많이 지나다녀서 빠질 염려가 없는 황토길을 놔두고, 스릴을 느끼도록 '묘기'를 보여준답시고 눈길을 택한 결과였다.
4륜 구동 모드로 안간힘을 써 보지만 전진을 해도 후진을 해도 바퀴가 헛돌기만 할 뿐, 상황 타개가 되질 않는다.
딴에는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호의였는데 결과는 최악이 돼 버렸다.
해는 뉘엿뉘엿 지려고 하는데 차는 움직이질 못하고.. 얼마나 어렵게 찾아 온 곳인데 어쩌란 말인가?
산전수전 다 겪은 가이드님, 처음에는 걱정 말라고 안심을 시키더니 10여분이 지나도 상황타개가 안되자 그이도 당황스런 기색이 역력하다.
우리 가족을 태운 승합차가 눈길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빠져버렸다.
상황타개가 안되자 큰 카메라를 들고 온 나를 사진작가라고 생각했는지 다음 사진 찍을 포인트까지 얼마 안 되니까 걸어서라도 먼저 가라고 권한다.
아내와 딸도 그러는 것이 좋겠다고 동의한다.
그 말을 듣자말자 앞 뒤 잴 것도 없이 카메라와 삼각대만 챙겨서 들구 뛰기 시작했다.
걷고 뛰는 것에는 자신 있으므로..
그런데 가깝다던 포인트가 가깝지가 않다.
하지만 중도에 포기할 수는 없는 일, 끝장을 봐야 했다.
햇살은 빠른 속도로 빛을 잃어 가는데 차는 수렁에 빠지고 갈 길은 멀고..
하지만 가깝다던 길은 생각보다 멀었다.
삼각대와 카메라만 들고 냅다 뛴 게 15분쯤 되니까 약 2km는 되는 것 같다.
저멀리 몇개의 촛대바위가 시야에 잡히는데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으니 마음이 더 급하다.
겨우 사진촬영이 가능한 곳까지 도착했으나 해가 지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촬영하기에는 빛이 너무 부족했다.
그나마 완전 어둠이 내린 것에 비하면 촬영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ISO값과 노출을 최대한 열어서 아쉬운대로 촬영을 마쳤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지간하면 포기하고 말았을 것인데 내 극성스러움의 결과로 어쨌든 아래 그림을 담아오기는 했다.
아쉬운대로 촬영을 마치고 발길을 돌리려니까 그제서야 아내와 딸 생각에 덜컥 불안감이 엄습한다.
약 25분이 지났는데도 차량이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한 것일까?
차가 보이지 않으니까 불안감은 불길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혹시 두 여자를 납치하기 위해서 일부러 꾸민 일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이곳이 어디쯤인지도 모르는 채 어둠 내리는 황야에 혼자 버려진 신세다.
그보다도 아내와 딸의 행방은?
생각만으로도 머리털이 곤두서고 소름이 끼치는 일이었다.
내가 욕심을 안 부렸어야 하는데..
‘흩어지면 죽는다’는 진리는 투쟁현장 만이 아니라 아메리카 여행길에서도 진리였다.
다시는 욕심 부리지 말아야지,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간절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왔던 길을 또 뛰는데 아까 오면서 느낌보다도 훨씬 더 멀게 느껴진다.
그 때 저 멀리서 엔진소리가 들리더니 차량 한대가 시야에 잡힌다.
그 차가 아내와 딸이 탄 차임을 확인하는 순간의 심정을 어찌 표현하랴.
당시에 아내와 딸에게조차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비로소 고백한다.
극적인 가족상봉을 마치고 돌아나오는 길에..
(제법 어둠이 내린 상태였으나 ISO값 및 노출 셔속을 최대한 조정하여 촬영하고도 어두워서 후보정을 한 사진)
차가 눈길에 빠지지 않았다면 어둠이 내리기 전ㅇ 시야에 보이는 저곳까지 차를 몰아 돌아다녔을텐데 여기까지가 내 복이었나 보다.
어둠이 내린 황야에서 탐방을 더 할 수는 없으므로 철수를 할 수밖에..
탐방일정을 절반쯤 망친 가이드를 탓하기 보다는 무사히 가족상봉이 이루어져서 고마웠다.
그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던 호의였는데 결과가 안좋았던 것이니 원망을 할 수가 없었다.
아내와 딸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출발점으로 돌아와서는 값을 깎았던 것에다 얼마를 더 얹어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우리처럼 늦게 돌아오는 관광객이 없어서 출입구에는 이미 바리케이트가 닫혀져 있었다.
노련한 가이드가 아니라면 우리는 꼼짝없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어쨋든 우여곡절 끝에 깜깜한 밤에 탐방 출발지점으로 무사히 귀환을 했다.
일단 안심이 되자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한 아쉬움에 모뉴멘트의 별밤이라도 담고 싶은 욕심이 발동한다.
멀리 나갈 수는 없고 아쉬운대로 차 옆에다 삼각대를 설치하고 두 세컷을 찍을 무렵 두 여자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다고 난리를 친다.
이곳에서 하루를 묵는다면 더 욕심을 내 보겠는데 밤길 약120마일을 달려 다음 목적지인 페이지(Page)까지 가야한다.
그리고 오늘은 강행군을 하느라 점심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는데다 저녁도 이동중에 해결해야 하니까 아내와 딸의 심기를 더 건드리면 곤란하다.
어쩔수 없이 철수를 했는데 나중에 사진을 정리하면서 보니까 야경사진을 좀 더 찍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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