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노래하는 시선/자연나라

인왕산과 치마바위

kk고상 2010. 11. 20. 20:18

 

 인왕산과 치마바위*

 

 

 가파르고 성곽을  신축했다

 

 

 청와대가 코앞에

 

 

 

 

 

 

 

 

 

 

 여기가 정상인데 어떤 분이 안내려와 사진만

 

 

 점차 황사현상이 심해 흐려진다 성곽 아래는 사직터널 쪽이고 서대문이다

 

*인왕산

 

서울특별시 종로구와 서대문구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338m. 산 전체에 화강암으로 된 암반이 노출되어 있으며,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곳곳에 솟아 있어 조선시대부터 명산으로 알려져왔다. 산의 서쪽 기슭에 있는, 중이 장삼을 입은 듯한 선바위(서울특별시 민속자료 제4호)는 예로부터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잘 이루어졌다고 하여 유명하다. 일제강점기에 남산에 있던 무신당인 국사당을 선바위 옆으로 옮긴 뒤부터 무속신앙과 더욱 밀착되었으며, 주위에 많은 무신당이 생겨 지금도 굿이 성행하고 있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하는 서울의 성곽이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는 자하문·명륜동·동대문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사직동·홍제동까지 이어진다. 군사적인 이유로 한때 출입이 통제되었으나, 지금은 사직공원·청원 아파트·무악재길 등에서 출발하여 성곽을 따라 정상에 이르는 등산로가 개방되어 있다.

*치마바위

 

단경왕후는 연산조 때, 후일 조선의 제11대 왕위에 오른 중종비가 되었습니다. 훗날 연산군을 퇴출시키는 중종반정이 일어나 왕후가 되었으나 아버지인 신수근이 매부인 연산군(연산군부인은 단경왕후의 고모)을 축출하는 일에 반대했기 때문에 성희안 등 반정파에 의해서 아버지는 살해 당합니다.

 

아무리 왕후지만 반정세력이 단경왕후를 그대로 두었을 리 없었겠지요. 그렇습니다.  단경왕후는 역적의 딸이라 하여 왕후가 된지 일주일만에 남편인 중종에게도 눈물어린 이별을 안긴 채 궁에서 쫒겨 나오고 맙니다. 더구나 단경왕후는 소생조차도 없어 너무도 쉽게 폐위되어 본가로 쫒겨 난 것이지요.  200여년이 훨씬 지난 영조 때에 왕후로 복위되긴 했지만 그 한스러움이야 오죽했겠습니까?


세월이 흘러도 그런 단경왕후를 지독히도 그리워하는 분이 계셨지요. 바로 중종입니다. 중종이 자신을 몽매간에도 그리워한다는 소문을 들은 단경왕후는 경복궁에서 잘 바라다 보이는 인왕산 넓은 바위벽에 자신이 대궐안에서 입었던 치마를 아침이면 걸어두고 저녁에는 거둬들이는 일로 하루를 맞이하고 또 하루를 보냈습니다. 경회루에 납신 왕께서도 치마라도 보면서 애틋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풀기를 바랬습니다. 치마바위는 이렇게 이름 지어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