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 제37소시집 굴 갯바위에서 태어나 입을 열면 죽기에 입을 꼭 다물고 침묵으로 인내하며 사는 삶 굴은 억울하다 굴 따는 할머니 다가와 쇠칼쿠리로 입을 째고 온몸 실고 갈 때 굴은 보시하는 것이니 보름달은 뜨고 별은 눈 흘린다 한 톨의 죄도 없는데 평생 금식하고 바다이야기와 바닷물로 목 축여야 .. 일려 시 50선 2010.12.01
단풍따라 空이 흐른다 제37소시집 단 풍 逸麗 고 상 원 나뭇잎 따라 뜨거운 피가 흐른다 달빛이 흐른다 햇살이 흐른다 거목이 흐른다 어둠이 고목이 되어 햇살이 흐른다 단풍은 햇살 따라 거목이 되어 깨달음이 흐른다 아침마다 꽃 단풍은 희로애락 너머 空이 흐른다 일려 시 50선 2010.11.11
낙엽 제37소시집 낙엽 발버둥 치며 살아온 시간 웃음 치며 잠시 인연 끊는다 바람의 노예가 되어 산과 거리의 노숙자로 화려하게 인연 마감하고 대지의 품으로 돌아와 있다 자연을 섬기는 노숙자들 한 해의 끝자락에서 고단한 生 내려놓고 生은 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 속삭이며 바람의 자세로 누워 있다 .. 일려 시 50선 2010.11.08
시월은 처녀가 눈 흘리는 달이다 제37소시집 시월은 처녀가 눈 흘리는 달이다 고 상 원 울긋불긋 시월은 처녀가 눈 흘리는 달이다 사내는 산처녀에게 절정에서 발광한다 이윽고 한 입 물은 단풍의 그 맛 虛와 實이 하나되어 산이 무너진다 空이 노을처럼 시월을 물들인다 일려 시 50선 2010.11.05
억새풀은 울지 않다 제37소시집 억새풀은 울지 않다 속이 없는 억새는 흔들리는 아픔은 얘기 안하고 튼튼한 조상의 뿌리 얘기로 사내요 머리가 희고 몸이 늙어도 조상의 뿌리 덕으로 잘 사네요 꽃이 다 지고 없어도 있는 것처럼 바람을 등지고 해와 함께 잘 사내요 자연을 노래하는 민족시인입니다 속이 텅 비어 있어도 꼿.. 일려 시 50선 2010.10.30
단풍 제37소시집 단 풍 푸릇푸릇한 신념 갖고 살아온 남달리 의지가 센 그녀는 쓰디 쓴 더위 잘 먹는 내 곁을 꼭 지키며 시집 안 갈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오색옷 꺼내 입은 느티나무 가로수 수줍게 시집간단다 깊게 숨겨둔 진심 물들이고 일려 시 50선 2010.10.24
단풍 제37소시집 단풍 속으로 퍼렇게 멍들은 산처녀 풋사랑 품은 채 벌써 황혼이지만 이렇게 저렇게 입은 함박꽃이다 가슴은 덕유산이다 나무마다 황금빛으로 살았다는 표현 너무 여성적이다 핏빛으로 살았다는 표현 너무 남성적이다 빈손으로 잘 살았다는 소리 없는 이별의 표현 너무 슬프다 평생 풋사랑.. 일려 시 50선 2010.10.24
들 단풍 속으로 제37소시집 들 단풍 속으로 逸麗 물든 산은 눈으로 즐깁니다 익어가는 들은 농심으로 천심을 즐깁니다 들단풍은 고요한 농심을 즐깁니다 산단풍은 아리랑 고개 넘어가며 화려한 기쁨에 졸립니다 기러기 가족이 낭만 속으로 하늘 뚫고 달려옵니다 먼 시베리아에서 달려왔는데 외면합니다 북녘들 거쳐 .. 일려 시 50선 2010.10.14
길 제36소시집 길 逸麗 고 상 원 해와 달 마주앉아 산들바람 타고 결실 익히고 구우며 苦盡甘來* 길 연다 서늘한 달빛 굽이치며 선녀와 천사가 나타날 듯 호젓한 상수리나무 숲길에 지난 지겨운 여름 뜨거운 햇살 삼킨 들국화 미소와 함께 달그림자 밟는 다람쥐의 숨소리 苦盡甘來 들숨이다 찜통 더위와 .. 일려 시 50선 2010.10.08
농부 제36소시집 농부 하늘을 너무 믿다 입이 마르게 흙을 헐뜯고 흙을 너무 믿다 입이 마르게 하늘을 헐뜯는데 어제 우리집 뜰에 찾아온 귀한 손님 꽃 무릇 황토와 파란 하늘이 뼈 빠지게 키워온 농심이 자라 설악샘물처럼 맑은 농부 참새도 없는데 허수아비로 하루 종일 황금들판에 서있다 싸구려 쌀이 그.. 일려 시 50선 2010.10.03